이 지점에서 해남문화관광재단은 시장의 빈자리를 정확히 짚었어요. '채워주는 힐링'이 아니라 '덜어내는 비움'이 필요하다는 것.
"브랜드의 정체성은 무엇을 추가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빼는가에서 결정된다."
오늘은 '멍때리기'라는 추상적인 행위를 시각 언어로 옮긴 해멍 프로젝트의 브랜딩 스토리를 소개할게요!
Chapter 1. 해멍 프로젝트, 어떤 브랜드일까요?
📍브랜드명에 담긴 두 가지 의미
해멍 프로젝트는 한국 최남단 해남에서 펼쳐지는 힐링 경험 브랜드예요. 영문명은 'Healing-HAE in Haenam'. 영어로 읽으면 "Healing HAE가 해남에 있다", 한국어로 읽으면 "해남에서 힐링해"가 되는 위트 있는 이름이에요.
'해'는 바다(海)와 태양을 동시에 뜻하고, '멍'은 멍때리기에서 따왔어요. 해남이라는 장소와 멍때리기라는 행위를 한 음절씩 압축해 합친 이름. 단어 하나에 이미 두 가지 콘셉트가 맞물려 있었죠.
💭 왜 해남이였을까요?
해남은 자연 자원은 풍부하지만, 그걸 활용할 브랜드 언어가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해남을 찾아갈 이유를 설득할 단어 하나, 이미지 하나가 없는 상태였죠.
해남DMO는 새로운 접근을 택했어요. 자연 자원을 직접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자원이 사람에게 주는 정서적 경험을 브랜드화하자는 것. 디블러가 받은 의뢰는 단순한 로고 작업이 아닌, 해남DMO 최초의 깃발 브랜드 정체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하는 일이었어요.
💭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가요?
타겟을 정의하는 단계에서 디블러는 의외의 발견을 했어요. 멍때리기, 인스타그래머블한 풍경이라는 키워드를 보고 20~30대를 예상했는데, 해남문화관광재단은 30~50대 중장년층을 핵심 타겟으로 설정하고 있었거든요.
핵심 페르소나 중 하나는 "두 아이를 둔 38세 주부 이지영"이에요. "아이들만 보다가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라는 고민을 가진 분. 또 다른 페르소나 "24세 직장인 박지민"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뭔가 특별한 걸 해보고 싶어"라는 갈망을 품고 있죠. 결이 다른 두 그룹이지만 공통점은 하나예요. 둘 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것. 이 인사이트가 이후 모든 디자인 결정의 기준이 됐어요.
Chapter 2.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어갔을까요?
세 가지 다른 길, 하나의 정서
BI 개발에서 디블러는 같은 '비움'을 풀어내는 세 가지 방향을 제안했어요.
시안 1번은 점선(Dotted Line)이 만드는 간격과 템포.
미니멀한 라인 포인트를 더한 정돈된 시안으로, 비워내는 순간이 다음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표현했어요.
시안 2번은 굵고 단순한 손글씨.
핵심은 '멍' 글자의 'ㅁ' 안에 길게 늘린 빈 사각형을 넣은 것. "머릿속을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있는 상태"를 글자 안에 직접 구현한 아이디어였죠.
시안 3번은 반듯한 평체 타이포 안에 둥글게 휘어지는 획을 더해, 1번과 2번의 중간 균형을 잡은 시안이었어요.
최종 선택
결과적으로 시안 2번이 채택됐어요. 특히 'ㅁ' 안의 빈 공간 디테일이 핵심 결정 포인트였죠.
강점은 세 가지였어요. 브랜드명의 위트를 시각이 같은 강도로 받아냈고, 해남의 향토적 정겨움과 잘 맞았으며, 향후 '해' 시리즈로 확장될 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한 구조였어요.
Chapter 3. 어떤 경험을 설계했을까요?
💡 3단계 키비주얼 시스템
채택 후 디블러가 가장 공들인 결과물은 키비주얼이었어요. '멍때리기'라는 추상적 행위를 어떻게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시각 언어로 옮길 것인가.
해답은 3단계 시각화 시스템이었어요. 1단계는 선명한 해남의 실제 풍경, 2단계는 풍경이 색면으로 단순화된 추상화, 3단계는 모든 경계가 흐릿해지는 블러 상태. 세 단계를 나란히 놓으면 해남에 도착한 사람이 점점 마음을 비워가는 과정이 별다른 설명 없이 전달돼요.
컬러도 원칙 하나로 잡았어요. "모든 컬러는 해남에 실재하는 것에서 와야 한다." 해남 바다, 해남 하늘, 자연, 노을, 깊은 노을. 색 이름 대신 '해남의 무엇'으로 명명한 것이 의도였어요.
깃발 브랜드로서의 설계
해멍은 단순한 이벤트 브랜드가 아니에요. 향후 '해' 시리즈로 확장될 모(母)브랜드의 첫 단추예요.
그래서 디블러는 '해멍 고유 자산'과 '시리즈 공유 자산'을 의식적으로 구분해서 설계했어요. 'ㅁ' 안의 빈 공간은 멍때리기에서 나온 해멍 고유의 것. 반면 다섯 가지 컬러 시스템과 3단계 블러 구조는 시리즈 전체로 확장 가능한 자산이에요.
OUTRO. 비움이 가장 강력한 채움이 될 수 있다
해멍 프로젝트를 통해 디블러가 마주한 가장 큰 질문은 이거였어요. "디자인이 무언가를 채우기만 하는 작업일까. 비워내는 일도 디자인의 영역일까."
해멍은 그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선 브랜드예요. '멍' 글자 안에 길게 늘인 빈 사각형 하나가, 어떤 화려한 그래픽보다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는 것. 약속의 폭을 좁힐수록 브랜드의 정체성은 더 또렷해진다는 것.
해남의 끝에서 그 빈 사각형을 발견하고 "나 지금 멍때려도 되는구나"를 느끼는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하루가 진짜로 비워지기를 디블러는 바라요.